▲ 카드뉴스=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제공
 

“개인적인 질병이다” 반도체산업 혹은 전자산업이 발달한 나라는 예외없이 각종 암이 발생했다. 놀라운 건 피해자 주장에 대한 회사의 대응방식 또한 비슷하다는 점이다. 삼성도 그렇다. 삼성 계열사에서 이미 200여건의 사례가 반올림에 보고되었는데 삼성은 이를 모두 개인적인 질병으로 돌렸다.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기업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화학물질 공개다. 전자산업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종류는 많지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밝혀져 있지 않다. 또 성분을 영업비밀로 기재해놓아 정보를 파악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노동자들은 이런 물질을 다루고, 이런 물질은 밖으로 배출되기도 한다. 

2그램(g)짜리 반도체 칩(32MB DRAM) 1개를 생산하는데 1600g의 화석연료와 72g의 화학물질, 32000g의 물, 700 g의 가스가 사용된다. 2009년도 자료에 따르면 한 반도체회사 칩 가공(Fab)공정에는 518개 화학제품에 263개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칩 조립(Package)공정에는 76개의 제품에 65개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중에서 실제 작업환경 측정을 하는 물질은 Fab에서 약 10%,  package에서 약 20%정도만 모니터링 될 뿐이다. 즉 대다수의 물질은 측정 관리조차 되지 않는다.  

이 중 영업비밀 물질은 얼마나 될까. 위 자료에 따르면 칩 가공(Fab)공정에서 사용되는 518개 화학제품 중 233개 제품(44.64%)이 영업비밀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그 중 화학물질의 정보나 함량이 전혀 표기되지 않은 제품도 15개나 된다. 조립(package) 공정에서는 43개의 제품(55.8%)이 영업비밀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이를 계산해보면 영업비밀 물질의 함량 정도는 가공(fab)공정이 평균 32.9%, 조립(package)공정은 평균 27.8% 이다. 

노동자들이 그나마 공개된 화학물질이라도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물질안전보건자료(MDSD)를 보면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업현장에 구비하도록 한다. 그러나 노동자 입장에서 이를 숙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항목이 많기도 하거니와 원하는 정보 이외 다른 정보도 많다. 그래서 하나의 물질 정보를 찾는 데에만 십 여분 이상이 걸린다. 

게다가 반도체 공정의 사용물질은 단일 성분보다는 여러 성분이 복합되어 있다. 따라서 물질안전보건자료는 복합물질의 유해성, 영업비밀 물질의 정보의 한계성을 담보해 내지 못한다. 물질안전보건자료만 구비했다고 해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노동자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화학물질이 자외선, 고온, 플라스마 같은 고에너지 상태에서 사용된다는 점도 문제다. 원료물질 외에도 다양한 반응 부산물이 발생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포토(감광) 공정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화학물질이 열분해 되면 백혈병 등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인 벤젠이 나온다는 보고가 있으며, 이온 임플란타(이온주입)공정에서 아르신가스가 분해되어 발암성 물질인 비소가 나온다는 사실이 여러 논문에 보고됐다.

이런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는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화학물질은 원청, 하청 노동자를 가려서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건 외주화 된 협력업체다. 이들은 장비 세정이나 수리 등을 외부에서 수행한다. 사내 하청업체는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주목을 받지만, 외부 협력업체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학물질 노출에의 위험에서 안전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따라서 협력업체가 사업장 내부에 있든 외부에 있든 원청 사업주가 안전보건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아웃소싱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이는 본사의 제품을 만드는 일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탐욕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모두 한 식구들 아닌가. 

회사는 사용 화학물질에 대한 영업비밀 주장을 남용해서는 안된다. 사실 따져보면 사용 화학물질의 제품명이나 함량이 아닌, 화학물질의 목록과 빈번히 사용되는 물질 정보까지 비밀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회사는 회사의 이익 때문에 비공개라고 하는데 이 역시 납득이 안 된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삼성병원은 투명하지 않은 정보 공개로 인해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전자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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